대명大明의 여명 (1) 시대의 끝, 시대의 시작 대명의 여명








 13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00년. 이 세상을 뒤덮은 것은, 바로 초원의 폭풍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광대한 초원과 그 아래로 넓게 펼쳐진 사막과 반 사막, 바로 그곳에서 자신들이 선택할 없는 운명의 결과로 태어난 이들이 있었다.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 이들에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빛’ 은 극히 일부만 허락되었다. 절망적인 환경과 가혹함 속에서 단련된 폭력적인 삶의 방식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강해야만 했다.



 빛의 그림자와 어둠의 굶주린 속에서 강해진 그들은 이윽고 남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살아남기 위하여 여기저기 헤매던 그들은 어느새 초원을 지나 농경 지대의 언저리, 정주 문명이 이룩해 놓은 기적과 마주하게 된다. 풍부한 농작물, 곡식으로 가득 찬 마을들, 도시들의 호화스러움, 그 모든 것들.



 여기에 매혹된 그들은 마침내 양 떼를 보호해 놓은 울타리를 넘어가기에 이른다. 막달레니안 기의 고대인이 세기를 거슬러 문명의 시대로 진군하고, 장안, 낙양, 개봉, 북경, 사마르칸트, 이스파한, 타브리즈, 코냐, 콘스탄티노플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둔 그들은 자신들에게 패배한 사람들의 위에 지배자로서 왕좌에 앉았다. 이제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왕관을 쓴 이 고대인들은, 중국의 황제가 되고, 페르시아의 샤가 되고, 인도의 군주가 되고, 룸의 술탄이 되어 중국인이 되었고, 페르시아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북방을 돌아보면, 초원의 깊숙한 암흑 속에서는 또 다른 굶주린 유목 집단이 출현하였고, 출세한 자기 사촌들을 목표로 또다시 문명의 세계로 진군하는 것이다. 이제 문명의 수호자가 된 이전의 고대인들은 그들을 막아내기 위해 격돌하였고, 여기서 패배할 경우 다른 고대인이 문명의 세계에서 왕관을 착용했다. 그리고, 다시 북쪽에선 새로운 유목 집단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반복되었던 역사의 어떠한 리듬이었지만, 어느 한순간만은 이 무게 추의 균형이 완전히 뒤틀렸다.



 테무진이라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9살의 나이에 소년은 고아가 되었다. 사나운 맹수들과 그 맹수보다도 더 무서운 초원의 폭력 속에서 9살 소년은 살아남았다. 아이가 44살에 이르자 그는 몽골을 통합시켰고, 65살의 나이엔 세상의 지배자로 불리며 죽었다. 그가 죽고 50년이 지나지 않아 막북, 금, 남송, 서하, 서요, 토번, 중동, 대리, 고려, 동유럽까지 문명 세계의 절반이 이 늑대 무리의 후예들에게 유린 당했다.



 인류의 역사가 여명 속에서 시작되어 당시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많은 세계가 그토록 짦은 시간동안 전란의 폭풍에 휩싸인 적은 결코 없었다. 



 동으로 서로 꿈틀거리는 강력한 힘의 폭력은, 비록 그것이 심하게 거칠긴 해도 무수한 교류를 창조해냈다. 지리적으로 또한 심리적으로 양극단에 놓인 수많은 문명과 문화의 경계가 압도적인 힘 앞에 뚫려 서로 통하게 되었고, 이윽고 무수한 찬란함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몽골 제국은 가장 강력했으며, 또한 가장 찬란한 제국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충격에 빠뜨리던 그 신선하고 역동적인 힘도 시간의 흐름 속에선 금세 옛 것이 되고 말았다. 번영이 끊이지 않자 쇠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나라를 물리치자 사방에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영광은 찬란해지자 나태와 방종으로 바뀌었으며 한때 넉넉한 풍요로움으로 보였던 모든 것들이 탐욕의 씨앗이 되었다. 가장 빛나던 순간이 무너짐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분열된 몽골 제국 최대의 국가는 바로 중국을 장악한 원나라였다. 그러나 최후의 위대한 대 칸 쿠빌라이 사후 제국은 이미 타성으로 움직이는듯 했다.



 5대 황제 영종(英宗) 시디발라는 어사대부 테에시(鐵失)의 손에 옹립되었으나, 테에시는 곧 영종을 죽이고 예순 테무르를 진종(晉宗)으로 옹립했다. 우승상 엘 테무르(燕鐵木兒)도 명종(明宗) 쿠살라를 옹립했다가 죽여 동생 투그 테무르를 문종(文宗)으로 세웠다. 문종은 사망하며 형인 명종의 큰아들 토곤 테무르를 제위에 올리라고 명령했지만, 엘 테무르는 그것을 무시하고 이렌친발을 영종(寧宗)으로 즉위시켰다.



 이런 이야기는 끝이 없다. 칭기즈 칸 시대에 초원의 씩씩한 상무 정신이란 이미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조정에선 끊임없이 권신들의 격렬한 권력 투쟁이 있었고, 승리하면 황제가 되고 패배하면 죽이면 그만이었다. 겉치레만의 이념이나 이상 마저도 이 정권에는 없었다. 그저 야만스러운 힘과 폭력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억지스러울 것이다.



 기만과 폭력의 조정을 지나, 지방에서는 하늘마저도 백성들을 저버리고 있었다. 



 1344년 5월 장맛비가 멈추지 않고 내려 황하가 범람하고 수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다. 관개 시절이 부서지자 이윽고 대기근이 찾아왔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었고, 사방에서 지진이 있었다. 1340년과 1350년에 이르러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퍼져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아마도 중국으로 전파된 흑사병(黑死病) 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서 도적 무리가 되었다. 반기를 들고 싸우다가 죽건 먹을 것이 없어 죽건 피차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는 조정에서는 그런 도적 무리도 제대로 진압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정은 병사를 보낼 수도 없었다. 어차피 황실의 직할지(直轄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제국의 대다수 지역은 힘 있는 군벌들이 사실상 자신의 영지로 부리고 있어 조정 마음대로 군사를 보낼 수도 없다. 행정마저도 엉터리였던 셈이다.



 한 세기를 지배한 세계 제국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 반작용으로 세상은 뒤흔들리고 있었다. 조정에선 군벌의 항쟁과 사치의 향락이 되풀이된다. 외국에선 고려나 러시아 등이 몽골의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시골에는 기근이 들고, 지진이 일어나고, 메뚜기가 설치며, 백성들은 도적이 되었다. 여러 종교가 난립하며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솔깃하게 했고, 점차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마니교에서 비롯된 명교(明敎)는 명왕(明王)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리라 예언했다. 비록 지금은 암흑의 세력이 우세를 접하고 있으나, 언젠가 나타날 명왕이 광명을 이끌어 암흑과 싸워 이길 것이라고 말이다. 미륵교(彌勒敎)는 미륵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 석가를 계승할 것이라고 했다. 미륵이 나타나기만 하면 세상은 바로 달라지고 토지는 넒고 깨끗해지며 인구는 나날이 많아지고 도시도 더욱 풍요로워진다. 벼와 보리는 한번 심으면 일곱 차례 수확할 수 있고 논밭 갈고 김맬 필요도 없이 곡식은 저절로 익어간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백련교(白蓮敎)에서는 이윽고 아미타불이 정토에 태어나 사람을 구할 것이라 했다.



 비록 지금은 착취를 받고 있지만, 현실의 나는 이토록 초라하고 비참하지만, 언젠가는 ‘명왕’과 ‘미륵’ 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삶이 찌들고 고통받으면 고통받을수록, 사람들은 마음속에 그런 희망 하나를 가지고 그것만을 믿으며 기둥으로 삼아 살아갔다. 만일 어딘가의 누군가가 ‘미륵’ 과 ‘명왕’ 을 자처하고 군사를 일으킨다면? 서둘러 달려가서 미륵 명왕을 위해 싸워 광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통치 계급 입장에선 이보다 더 두려운 일도 없었다.



 같은 시대 바다에서는 채란두(蔡亂頭)와 방국진(方國珍) 같은 해적들이 해운(海運)을 장악했다. 해상으로 올라오는 남부의 재물과 양식에 크게 의존하는 조정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보다 먼 이역의 바다에서는 왜구(倭寇)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원 제국이 무너져 내렸고, 중동에서는 일 칸국과 차가타이 칸국이 희대의 괴물 티무르의 손아귀에서 농락 당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고려 역시 혼란에 빠졌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패망하면서 남북조의 형세에 접어들게 되었다. 



 분명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 걸쳐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위치와 국적을 떠나 시대를 볼 줄 아는 식견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였다.



"하늘의 기수(氣數)는 순환하여 한 번 돌면 다시 시작하는데, 700년이 하나의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이면 하나의 대주원(大周元)이 되므로, 이것이 삼황과 오제, 왕업(王業)과 패업(覇業)의 치란과 흥쇠의 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방이 이제 저 단군으로부터 내려온지 이제 3,600년. 이에 대주원의 기회가 왔습니다.” (1)



 고려의 백문보(白文寶)는 공민왕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기수는 기나긴 시간을 거쳐 순환한다. 700년에 한 번씩 돌며, 그것이 쌓여 3,600년에 이르면 거대한 대주원이 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대주원의 시기이다, 지금이 바로 이전 시대의 끝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한 시대의 끝.



 그리고 다시 한 시대의 시작.



 그것이 이전과 비교하여 좋을지 나쁠 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지금으로썬 짐작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무언가 바뀔 것이다. 제국의 황제이든, 조정의 권신이건, 무장한 군벌이건, 사색하는 문인이건, 남다른 이재(理財)를 가진 상인이건, 그들 모두는 이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는 피할 수 없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운명이었다. 



 피할 수 없다.



 그렇다. 누구도 닥쳐올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그것이 설사, 세상의 거친 풍랑 속에서 가장 먼저 나가떨어질, 일개 민초 한 명에 불과하다고 해도.













 원나라 지정 4년. 1344년. 호주(濠州)의 한 야산.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산길을 두 형제가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맨몸으로 산을 오르려 해도 어렵겠건만, 두 형제는 거적때기를 싸서 들고 있어 산길을 오르는 길은 더욱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고 있는 거적을 버려두고 갈 수도 없었다. 거적에 싸여 있는 건, 형제들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시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신이기도 했다. 또한 형제들 중 첫째의 시신이었으며, 셋째의 시신이었다. 그들이 짊어지고 있었던 것은, 자신들 일가족 전부의 시체였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감히 땅에 내려놓거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형제는 네 사람의 주검을 끙끙거리며 조심스레 운반하려 했다. 하지만, 형제가 노력한다고 해도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낡아빠진 거적을 둘러싸서 맨 그 못지않게 낡은 끈이 결국 사단을 일으킨 탓이다. 네 명의 주검에 무게를 견디지 못한 끈은 결국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지고 말았다.



 투두둑. 끈이 끊어지자 네 명의 주검이 처참하게 땅에 널브러졌다. 형제가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막아보려 해도 무리였다. 비참한 기분이었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널브러진 시체를 다시 수습해서 들고 가야만 했다.



 하지만 거적을 싸고 보니, 이를 묶을 끈이 없었다. 그대로는 일가족의 주검을 가지고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형제 중에 본래라면 ‘둘째’ 에 해당했을 형이 막냇동생을 붙잡고 말했다.



 “안되겠다. 내가 마을에 내려가서 다시 끈을 가지고 오마. 그러니 중팔(重八)이 너는 주검을 지키고 있거라. 알겠지?”



 막냇동생 주중팔(朱重八)에게 그리 당부한 형은 다시 산기슭을 내려갔다. 비바람이 쏟아지는 산속에서 16살의 동생 중팔은 황망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것이라곤, 말 못하는 가족들의 싸늘해진 몸뚱어리 뿐이다.



 중팔은 앉아서 멍하니 형을 기다린다. 하지만 빗줄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이제는 급기야 천둥벼락까지 치는 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시신이 물에 젖는 건 둘째치고, 중팔 자신도 몸이 차가워져 그대로 쓰러질 수도 있었다. 못 먹고 살았으니 그런 걱정도 기우는 아니리라. 부모와 형제들도 갑자기 죽은 것이었다. 그나마 멀지 않은 근처에 절이 하나 있었다. 중팔은 ‘죽지 않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의 시체를 두고 절로 몸을 피했다. 



 좀 더 평온하던 때라면 절간에서 무언가 얻어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엔 먹을 것이 없어 있던 승려들도 행각승이 되어 절을 나오던 판이다. 오고 가는 거지 한 명에게 줄 건 쌀 한 톨도 없었다. 그저 비만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던 셈이다. 



 추운 절간 구석에 앉아, 이미 젖어버린 몸뚱이와 옷 때문에 부들부들 떤다. 절간 너머로 빗소리가 들린다. 저 산 어디에서, 거적때기에 쌓여진 가족의 시신은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비를 맞고 있겠지. 어쩌면 산의 들짐승들에게 시체가 뜯어먹였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하더라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없는 살림에도 같이 웃고 울던 아버지, 어머니, 형들……



 비는 쉬이 그치지 않는다. 중팔은 추위에 잔뜩 웅크리면서도, 억지로 눈을 감았다. (2)











(1) 《고려사》열전 백문보(白文寶) 전 中

(2) 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 中 
- 갑신년, 사주에 큰 병이 돌아 부모, 형, 그리고 셋째형이 모두 죽었다. 가난하여 염습을 할 수 없어서 거적에 싸서 매장 하려는데, 둘째 형과 태조가 메어 들고 산기슭에 이르자 끈이 끊어졌다. 둘째형이 다시 끈을 가져오려고 태조에게 머물러 주검을 지키도록 했다. 홀연히 뇌우(雷雨)가 거세게 몰아쳐니, 태조는 마을의 절 안으로 피신하였다.
( 少時嘗苦病,父欲度為僧。歲甲申,泗大疫,父母兄及幼弟俱死,貧不能殮,藁葬之。仲與太祖舁至山麓,綆絕,仲還取綆,留太祖守之。忽雷雨大作,太祖避村寺中。)






덧글

  • 無碍子 2017/06/10 09:40 # 답글

    반갑습니다.
  • 죄송합니다 2018/01/30 21:14 # 삭제 답글

    제가 스마트폰 보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신고처리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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